


1. 익숙했던 질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안보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더 본질적인 변화는 전장의 상황보다 동맹의 개념 자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우크라이나 전쟁은 종전 논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협상은 반복적인 교착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핵심 쟁점은 여전히 영토 문제와 전후 안전보장 체계입니다.
미국은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사실상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방안을 협상 카드로 제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이를 주권과 국제법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처럼 전쟁의 향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유럽이 직면한 더 큰 문제는 “과연 미국은 끝까지 유럽의 안보를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2. 미국의 시선은 더 이상 과거의 동맹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2025년 말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은 유럽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문서에서 미국은 러시아를 더 이상 대서양 동맹의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서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 안보의 문제는 러시아보다, 스스로 방위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유럽 동맹국들에 있다는 인식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에 대해 미국이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힌 점은,
2022년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를 “심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규정했던 기존 합의와 분명히 대비됩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대서양 관계의 전제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3. ‘가치 동맹’에서 ‘거리 두기’로 이동하는 인식의 변화
이번 전략 문서에서 유럽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부분은, 미국이 유럽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입니다.
미국은 유럽이
ⓐ 대규모 이민 확대
ⓑ 출산율 급감
ⓒ 전통적 가치의 약화
로 인해 장기적인 국가 역량 약화와 문명적 쇠퇴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2025년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JD 밴스 부통령이 “유럽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가치의 붕괴”라고 발언한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미국은 더 이상 ‘같은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보호하는 동맹’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4. 그래서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내부에서 빠르게 새로운 담론을 낳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징병제 부활 논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의 재침공 가능성에 대한 대응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항상,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유럽을 방어해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 인식입니다.
유럽이 말하는 전략적 자율성이란
- 미국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미국에 덜 의존해도 최소한의 안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토 제5조의 집단방위 조항은 자동 작동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전략적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5. 이 변화는 유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변화는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중국은 더 이상 체제 전복적 위협이 아니라, 관리와 재균형이 필요한 경쟁적 파트너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 인도·태평양 전략과 가치 외교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이 지역 동맹국들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전략을 보조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향후 동맹 의무가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6.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지 앞에 서 있는가
이 지점에서 한국은 매우 복잡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 한·미동맹을 유지·강화해야 하는 현실
- 동시에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
이 두 가지는 겉으로 보기에 상충하는 개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경험이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전략적 자율성이란 동맹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이 흔들릴 때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는 과정입니다.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동맹 의존과 자주 국방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는 동맹에 기대고, 어디부터는 자율적으로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설계입니다.
7.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토론입니다
이 글은 하나의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대서양 관계가 흔들리는 지금, 전략적 자율성은 더 이상 유럽만의 화두가 아닙니다.
2026년은 한국에게
- 동맹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 전략적 자율성의 범위와 수단을 논의하며
- 사회적·정치적 합의를 축적해야 하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논의 없이,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8. 3줄 요약
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변화는 대서양 동맹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습니다.
⑵ 유럽은 이에 대응해 ‘전략적 자율성’을 통해 동맹 의존도를 조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⑶ 한국 역시 동맹과 자율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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